거미가 체내 액체 단백질 혼합물(실크 도프)을 순식간에 고체 섬유로 뽑아내는 분자 수준의 메커니즘이 새롭게 규명되었습니다.
거미줄 단백질이 완전히 굳기 전 '응축물'이라는 유연한 반액체 방울을 형성해 분자를 정렬시키는 것이 초고강도의 비결로 확인되었습니다.
강철보다 강하고 인체에 무해한 특성 덕분에 방탄 헬멧, 안전벨트, 뇌세포 재생 지지체 등 차세대 신소재 개발에 큰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요약 거미가 벽에서 떨어질 때 바닥에 부딪히지 않고 순식간에 실을 뿜어 매달리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 거미줄은 방탄복에 쓰이는 합성섬유 케블라보다 질기고 강철보다 강하면서도 유연하고 인체에 무해한 특성을 지녔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활용해 고성능 안전벨트나 헬멧, 해군 자재, 나아가 뇌세포 재생용 지지체까지 만들기를 꿈꿔왔지만, 연구실에서 인공 거미줄을 완벽히 재현하는 것은 오랜 난제였습니다. 거미가 실샘 안의 액체 단백질 혼합물인 이른바 '실크 도프(silk dope)'를 어떻게 순식간에 강력한 고체 섬유로 뽑아내는지 분자 수준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의 그레고리 홀랜드 교수 연구팀은 거미의 액체 도프 속 분자들이 고체 섬유로 굳어지기 직전, '응축물(condensate)'이라는 반액체 상태의 액적 방울로 먼저 재배열된다는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밝혀냈습니다. 거미줄을 구성하는 단백질인 스피드로인(spidroin)은 원래 고정된 형태 없이 무질서하게 출렁이는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 단백질들이 응축물 형태로 뭉치면서 고체처럼 완전히 고정되지 않은 유연한 환경 속에서 분자들을 미리 농축하고 정렬시키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단백질 응축 현상은 거미줄뿐만 아니라 자연계 곳곳에서 놀라운 물질을 만들 때 널리 쓰이는 전략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홍합이 바위에 단단히 달라붙게 하는 접착제, 오징어 부리의 단단한 부위 형성, 모래성갯지렁이가 모래로 튼튼한 집을 짓는 해양 시멘트 등도 모두 이와 유사한 응축물 원리를 이용합니다. 과학자들은 자연이 고강도 생체 소재를 만드는 핵심 열쇠인 응축물의 형성 메커니즘을 규명함으로써, 자연계 최강의 섬유를 실험실에서 완벽히 합성해 낼 실마리를 찾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