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1980년대 제록스 대형 복사기는 극도로 복잡해 잦은 고장을 일으켰으나, 본사는 기사들이 정해진 매뉴얼대로만 일한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 인류학자 줄리언 오어의 관찰 결과, 기사들은 매뉴얼이 아닌 동료들과 식사하며 나누는 '실전 무용담 잡담'을 통해 고난도 고장을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 현장 기사들의 비공식적인 소통과 스토리텔링이 사실상 복사기 수리 유지보수의 핵심 동력이었음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요약 1980년대 제록스(Xerox)의 대형 복사기는 미국의 수많은 사무실에 보급되었으나, 동시에 엄청난 소음과 고장으로 직장인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겨주었습니다. 대표 모델인 '제록스 9400'의 경우 무게만 1.5톤에 달하고 2024년 기준 43만 달러(약 8만 5천 달러)에 달하는 초고가 장비였으며, 1초에 2장씩 복사하고 50개 분리함으로 정렬하는 등 기계적·전기적 복잡도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부품 하나나 미세한 전기장 제어 시퀀스만 어긋나도 복사 품질이 망가지거나 기계 전체가 멈추기 일쑤였습니다.
제록스 본사는 수리 기사들이 정형화된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작업한다고 여겼고, 현장 작업자들에게 정장 차림에 서류 가방을 들고 다니도록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PARC)의 인류학자 줄리언 오어(Julian Orr)가 현장을 밀착 관찰한 결과, 실제 수리 작업은 본사의 생각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각 기계마다 상태와 고장 패턴이 제각각인 데다 매뉴얼로 해결할 수 없는 미지의 오류가 끊임없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사들이 기계를 정상 작동시키기 위해 의존한 핵심은 바로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누는 '잡담'과 '경험담(war stories)'이었습니다. 현장 기사들은 각자 마주친 황당한 고장 사례와 해결 과정을 동료들에게 이야기로 풀어내며 공유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문제 해결 노하우를 집단 지성으로 축적해 나갔습니다. 여기에 기계 자체의 결함뿐만 아니라 기계를 서툴게 다루는 고객들의 파괴적인 사용 습관까지 기사들의 즉흥적인 대처로 해결해야 하는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오어의 이 연구는 1996년 저서 '머신을 말하다(Talking About Machines)'로 출간되며 조직 관리와 현장 지식의 괴리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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