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1967년 중동전쟁 발발로 수에즈 운하가 봉쇄되면서 8개국 소속 상선 14척이 호수에 꼼짝없이 억류되었습니다.
- 냉전 대립 속에서도 선원들은 구명정으로 왕래하며 음식과 맥주를 나누고 '국적 철폐'를 선언한 자치 협회(GBLA)를 결성했습니다.
- 장기 봉쇄 속에서 초기 선원들은 두 달 만에 교대되었고, 남은 선박들은 수년간 독특한 해상 공동체를 유지했습니다.
요약 1967년 6월 5일, 3등 항해사 피터 플랙(Peter Flack)이 탑승한 화물선 아가페너(Agapenor)호가 수에즈 운하의 그레이트비터호(Great Bitter Lake)에 진입하던 중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스라엘 공군기들이 상공에서 이집트 공군 기지를 기습 폭격하며 일대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은 운하 양단을 완전히 봉쇄해 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8개국 소속의 상선 14척이 전쟁 한복판인 호수에 그대로 갇히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6일 만에 끝났지만 선박들은 여전히 풀려나지 못했습니다. 통신마저 끊긴 채 극심한 식수 및 식량 부족을 겪게 되자, 선원들은 구명정을 타고 서로의 배를 오가며 물자를 교환하기 시작했습니다. 각 배마다 실려 있던 생선, 육류, 계란, 쌀, 와인과 맥주 등을 나누며 교류가 시작되었고, 위험이 잦아들자 체스를 두거나 음악을 듣고,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는 등 독특한 일상이 펼쳐졌습니다. 초기 두 달간의 불안한 억류 생활 끝에 본국 송환 협상이 타결되면서 원래 선원들은 교대 인력에게 배를 넘기고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1969년 소모전과 1973년 4차 중동전쟁 등이 겹치며 운하 봉쇄는 기약 없이 이어졌습니다. 1969년 초에는 배에 실려 있던 과일들이 상해 수백 톤의 썩은 사과를 호수에 버려 배 주변이 온통 사과로 뒤덮이기도 했습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였지만, 서방(영국·프랑스·서독·미국)과 동구권(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불가리아), 그리고 중립국 스웨덴 출신의 선원들은 1967년 10월 '국적을 초월해 모두를 평등하게 대우한다'는 원칙 아래 자치 공동체인 '그레이트비터호 협회(GBLA)'를 결성하며 억류 속에서도 놀라운 연대와 유쾌함을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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