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포트나이트나 배그 이전인 2012년 마인크래프트 유튜버가 영화 '헝거 게임' 규칙을 본떠 만든 서바이벌 서버가 배틀로얄 장르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 이후 수많은 개발사가 뛰어들었으나 극소수만 살아남아 소액 결제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극단적인 승자독식 구조가 정착되었습니다.
- 제프 카플란, 마크 다라 등 베테랑 개발자들의 인사이트를 통해 라이브 서비스가 개발사의 저주인지 생존의 열쇠인지 긴 타임라인을 분석합니다.
번역 ‘2등은 거의 의미가 없다’ – 라이브 서비스는 어떻게 게임 업계를 1등을 차지하기 위한 배틀로얄로 만들었나.
워존(Warzone), 포트나이트(Fortnite), 심지어 배틀그라운드(PUBG: Battlegrounds)가 등장하기 전에는 마인크래프트 서바이벌 게임즈(Minecraft Survival Games)가 있었습니다.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노르웨이의 유튜버 데니스 배리데(Dennis Vaeride)가 영화 '헝거 게임'이 극장에서 개봉한 지 불과 한 달 뒤인 2012년 4월에 최초의 서바이벌 게임즈 서버를 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콘셉트는 캣니스의 끔찍한 시련에서 묘사된 규칙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수십 명의 플레이어가 원형 시작 지점의 중앙으로 질주해 보급품을 챙긴 뒤,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서로를 사냥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배리데는 자신이 게임 업계 전반에 걸친 거대한 배틀로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후 수많은 게임사가 이 공식을 모방하려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곳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소수의 게임사들은 소액 결제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동시 접속자 수 덕분에 막대한 수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라이브 서비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라이브 서비스는 오늘날 게임계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입니다. 이는 개발사들을 파멸로 몰고 갈 저주인 것일까요, 아니면 게임 업계가 생존하기 위한 핵심 열쇠인 것일까요? IGN은 오버워치의 제프 카플란(Jeff Kaplan)과 앤섬의 마크 다라(Mark Darrah)를 비롯한 베테랑 개발자들의 전문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라이브 서비스의 긴 역사를 집중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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