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드로스』에서 '문자'의 도입이 인간의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참된 지혜가 아닌 겉멋 든 착각만 낳는다고 비판했습니다.
- 소크라테스는 글이란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으며, 오직 대화와 문답을 통해서만 마음에 새겨지는 진짜 지식이 완성된다고 주장했습니다.
- 인쇄술이나 전화기뿐 아니라 '문자'라는 기초 기술조차 과거에는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인류 보편의 변화 저항감(꼰대 본능) 대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요약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기술이나 변화가 등장할 때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꼰대 본능’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전화기나 전기가 막 등장했던 1889년의 신문 기사나 15세기 금속활자 인쇄술 보급 당시의 기록을 보면 기술 발전을 한탄하는 목소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기원전 약 370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마저 당대 최첨단 기술이었던 ‘문자(글쓰기)’를 맹렬히 비판했다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드로스(Phaedrus)』에서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에게 이집트의 신 테우스(Theuth)와 국왕 타무스(Thamus)의 전설을 들려줍니다. 수와 기하학, 천문학, 그리고 ‘문자’를 발명한 테우스는 왕에게 문자가 사람들을 더 지혜롭게 만들고 기억력을 높여줄 명약이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타무스 왕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왕은 발명자가 자기 발명품의 해로움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며, 문자는 스스로 기억하려는 노력을 없애 오히려 사람들의 망각을 부추길 뿐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문자는 진정한 기억의 묘약이 아니라 단순한 ‘상기(기억 환기)’의 도구에 불과하며, 사람들에게 진정한 지혜가 아닌 지혜로워 보이는 겉모습만 줄 뿐이라는 지적이었죠. 가르침 없이 글만 읽은 자들은 자기가 다 안다고 착각해 오만해지고 대하기 힘든 사람이 된다는 경고도 덧붙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일화를 바탕으로 글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글이란 그림과 같아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질문을 던져도 침묵하거나 오직 같은 대답만 되풀이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글로 적힌 말은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과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 사이를 무차별하게 떠돌아다니며, 오해나 비난을 받아도 스스로를 변호할 힘이 없어 항상 원작자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보았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한 진정한 앎은 글자를 읽는 데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농부가 소중한 씨앗을 여름철 얕은 화분에 장난삼아 심지 않고 적절한 땅에 심어 8개월에 걸쳐 결실을 맺듯, 지혜로운 사람은 지워지지 않을 참된 지식을 글이라는 잉크로 함부로 뿌리지 않는다는 비유를 듭니다. 오직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치열한 대화와 문답을 통해서만 학습자의 마음에 살아 숨 쉬는 진짜 지식이 뿌리내릴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글자만 읽고 안다고 믿는 것은 호수를 바라보기만 해놓고 자기가 수영을 할 줄 안다고 착각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고대의 경고는,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는 인간의 본능적인 저항감을 유쾌하게 되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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